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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여정의 작은 첫 발걸음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by pipe_factory 2022.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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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리고 남미. 내가 좋아하는 두 단어이다. 그래서 한때 남미 일주를 메인 루트로 한 세계여행을 계획했었다. 그래서 회사도 퇴사하고 1년간의 계획은 잡고 호기롭게 여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중간에 건강상의 문제가 생겨서 남미를 코앞에 두고 5개월 만에 귀국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아직도 가슴 깊은 곳에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그때부터 이미 열 살이나 더 먹어버린 현실. 언젠간 꼭 가고 싶지만 떨어진 체력과 꺾여버린 열정으로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음을 느낀다. 하지만 나의 이 아쉬움을 가득 채워주는 이 영화가 있다. 물론 주인공들이 하는 개고생은 따라 하고 싶지 않지만 광활한 남미 대륙을 눈에 담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매우 행복했다. 거기다가 이 좌충우돌 여행기가 한 위대한 인간이 훗날 걷게 될 위대한 여정의 첫 발걸음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더더욱 봐야 할 가치가 있는 영화이다.

 

 

이때까진 좋았지

 

엉뚱한 두 청년, 남미 대륙 횡단을 꿈꾸다

 

1950년대 아르헨티나, 본인을 나병을 연구하는 의학도이자 럭비 선수, 그리고 천식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 스스로 소개하는 23세의 푸세라 불리는 에르네스토와 호기심이 가득 차고 열정적인 그의 친구인 생화학도 알베르토 그라나도가 있다. 그들은 4개월간 8천 km에 달하는 남미대륙을 횡단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가진 현재도 사실 어려운 여정인데 그들은 단지 지도 하나만을 들고 이 긴 여행을 계획하는 엉뚱함과 대담함을 보여준다. 그들의 계획은 안데스 산맥을 가로질러서 칠레 해안을 따라가면서 칠레의 광활한 아따까마 사막을 건너고 아마존을 지나 베네수엘라까지 당도하는 것이었다. 이 웅장한 계획에 비해 그들의 운송수단은 오직 낡은 오토바이 한 대. 그들은 그것에  '포데로사'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포데로사는 스페인어로 '힘 있는', '강력한' 이란 뜻이지만 이 오토바이는 이름과는 아주 거리가 있어 보인다. 떠나는 에르네스토에게 아버지는 널 믿는다며 총을 챙겨주고 어머니는 건강 잘 챙기라며 천식약을 챙겨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차이란. 그렇게 호기롭게 출발한 여행은 머지않아 오토바이가 미끄러지고 개천에 빠지며 이후에 고생길의 시작을 알려준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그들의 첫 목적지는 에르네스토의 여자 친구인 치치나의 집. 그들은 그곳에서 짧은 재회를 하고 여행을 위해 가슴 아픈 작별 인사를 한다. 그렇게 안데스 산맥에 진입하게 된 그들은 거친 산길에서 또 사고가 나게 된다. 그때 알베르토는 에르네스토가 지니고 있던 15달러를 발견한다. 이는 치치나가 여행경비로 챙겨준 것이었는데 알베르토는 그 돈으로 배부르고 편하게 여행할 꿈을 꾼다. 하지만 에르네스토는 언감생심, 그 돈으로 미국에 가서 치치나의 수영복을 사줄 것이라며 절대 그 돈을 못쓰게 한다. 이후에도 알베르토는 그 돈을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산속에서 야영을 위해 텐트를 치려던 중 강한 바람으로 텐트는 날아가 버리고 그들은 근처 농장에 헛간에서 하룻밤 보내게 된다. 이때부터가 고생의 시작이었으리라. 이후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총으로 명중시킨 오리가 강 한가운데 빠지게 되고 이를 건지기 위해 수영하여 들어갔던 에르네스토가 이로 인해 천식이 악화된다. 치치나의 돈으로 병원을 가자는 알베르토의 말을 끝까지 무시한 채 그는 약으로 참고 버틴다. 이쯤 되면 그의 고집도 보통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그렇게 그들은 보트를 타고 칠레에 들어가게 된다. 그 호수가 맘에 들었는지 에르네스토는 훗날 그곳에 병원을 짓고 여길 오는 모든 환자를 치료하자고 말한다. 이 대목이 그의 삶의 목표와 이상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다시 그들은 눈 덮인 안데스 산맥을 넘기 시작한다. 길은 얼어있고 눈은 쌓여있고 포데로사는 점점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그들은 포데로사를 타다 끌다 하며 겨우 어느 마을에 도착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곳 신문에 그들의 여행기가 실려 있었다. 가진 돈은 없고 고장 난 포데로사는 고쳐야 했던 그들은 그 신문으로 꾀를 내어 한 정비사로부터 무료로 고쳐 주겠다는 호의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그 정비사의 아내를 꼬셨다는 오해를 받고 허겁지겁 도망치듯 떠나게 된다.  

 

 

안녕, 포데로사 그리고 치치나

 

그렇게 다시 안데스 산맥을 넘던 그들 앞에 갑자기 소떼가 나타나게 되고 그들은 그것들을 피하다 또 한 번 사고가 나게 된다. 이로 인해 포데로사는 이제 더 이상 고칠 수도 없을 만큼 망가지고 말았다. 그렇게 단돈 1달러에 부품값만 받고 포데로사를 팔게 된다. 단지 그저 낡은 오토바이일 뿐인데 포데로사와 그들의 이별 장면은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만큼 그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한 포데로사였으리라. 그래도 그들의 여정은 멈출 수 없었다. 물론 치치나가 준 돈을 쓰자는 알베르토의 투정도 계속됐다. 그렇게 도착한 칠레의 어느 마을에서 에르네스토는 치치나의 편지를 받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이별 편지. 에르네스토는 깊은 슬픔에 빠졌지만 이 또한 그들을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은 본격적으로 사막에 들어선다. 포데로사조차 없으니 그들은 사막을 걷고 또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걷다 만난 원주민 부부. 그들은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갈 곳 없이 쫓겨나는 원주민들의 현실을 처음 접하게 된다. 이때부터였을까? 그의 가슴속에 혁명이라는 단어가 꽃피운 시점이. 그리고 그 후 사막을 따라가다 마주친 한 광산에서 그는 기본적인 인간 대접조차 받지 못하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광부들을 보며 엄청난 분노를 느끼게 된다. 

 

 

페루, 마추픽추, 그리고 문명이란 무엇인가 

 

그들은 한때 아메리카의 심장이라고 불리던 페루 쿠소코에 도착한다. 잉카 제국의 수고였던 코스코를 며칠 관광하고 그들은 드디어 마추픽추에 도달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기에 이 장면에서 그야말로 가슴이 웅장해졌다. 그 마추픽추를 보며 에르네스토는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스페인이 남미 대륙을 점령하며 모든 것이 바뀌었고 그들의 새로운 문명을 세우기 위해 어떻게 다른 문명을 그렇게 파괴할 수 있는지 그는 또 한 번 가슴속에 분노를 품는다. 그렇게 도착한 페루의 수도 리마, 그곳에서 페루 나병 환자 책임자를 만나고 어느 정도의 지원도 받고 나병 환자들이 모여사는 '산 빠블로'라는 곳으로 가라는 안내도 받는다. 그렇게 그들은 산 빠블로로 향하게 된다. 가는 배안에서도 에르네스토는 천식으로 죽을 뻔 하지만 나병 환자를 치료하고자 하는 그의 순수한 목적을 꺽지 못했다. 나병은 전염되진 않지만 안 좋은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한 곳에 모여 살아야 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들과의 접촉을 꺼렸지만 그들은 장갑조차 끼지 않은 채 그들과 살을 부비며 하나가 되어간다. 그들의 그런 노력 때문에 모든 나병 환자들이 그들을 한가족처럼 대했다. 그리고 에르네스토의 생일날, 생일파티를 하던 중 그는 강 건너에 있는 나병 환자들과 생일 축하를 함께 하겠다며 한밤중에 강에 뛰어든다. (나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료인과 수려님들조차 강 하나를 두고 떨어진 마을에서 생활을 했다) 그렇게 나병 환자들과 함께 생일 밤을 맞이했고 이것으로 그의 순수한 마음과 의도가 무엇인지 생생하게 전달이 된다.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 나병 환자들과 눈물의 작별을 한 후 뗏목을 타고 거대한 아마존 강을 거쳐 드디어 베네수엘라에 당도한 그들은 그렇게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이 이후에 에르네스토의 삶이 어땠는가를 알기에 이 두 사내의 이별 과정이 더 절절하게 다가온 것은 아니었을까? 

 

 

 

 

시대를 지나 그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체'라 불린 사나이

 

영화는 두 사나이가 작별하며 끝이 난다. 그리고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대부분 예상하셨겠지만 에르네스토는 훗날 '체'라 불리는 남미 공산주의 혁명의 주체가 된다. 이 글은 영화 리뷰이니만큼 그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다. 이 영화는 그가 혁명이라는 단어조차 몰랐을 순수했던 20대 초반의 청춘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에 삶이 궁금하시다면 꼭 한번 그에 대해서 찾아보길 권한다. 왜냐하면 체 게바라라는 이름이 익숙한 사람도 있고 생소한 사람도 있겠지만 위 초상화는 한 번쯤은 접해 봤으리라 생각한다. 한때 저 초상화가 프린팅 된 티셔츠가 유행하기도 했고 수많은 굿즈에 사용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체 게바라는 이념을 떠나서 어느새 시대의 아이콘, 저항의 아이콘이 되었기 때문에 한 번쯤 찾아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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